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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뎀 말씀

제목

당신은 축복의 통로입니까?

작성자
문요셉 목사
작성일
2017.08.12
첨부파일0
추천수
2
조회수
68
내용

당신은 축복의 통로입니까?(삼상1:19~28)

 

엘리 제사장의 축복을 하나님의 응답으로 받아들인 한나와 그의 남편 엘가나는.... 아침 일찍 일어나 여호와께 경배하고 라마의 집으로 돌아갑니다.

 

이 두 사람은 하나님의 응답에 순종하기 위해 조금도 지체하지 않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사무엘상은 두 가지 중요한 대조를 통해 하나님의 마음을 보게 합니다.

 

28절을 보시면...

여호와께세 번 나옵니다.

히브리어로 라이흐와...인데요... 이것을 번역하면 여호와를 위하여....입니다.

한나와 엘가나와 그들의 자식인 사무엘과 연합하여 하나님을 위하여 일하였던 것입니다.

 

그런데

엘리 제사장과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는 자신들을 위하여 사는 사람들이라는 대조를 보여줍니다.

이 부분은 2장에서 다시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을 위하여 살아가는 사람들....

하나님께서는 이런 사람들을 택하시고 그들을 통해 하나님께서 하시려는 일들을 이루어 가십니다.

 

19절 마지막 소절을 보시면...

여호와께서 그를 생각하신지라....고 말씀합니다.

생각하신지라는 단어 자카르가 처음 사용된 곳이

 

8:1 하나님이 노아와 그와 함께 방주에 있는 모든 들짐승과 가축을 기억하사 하나님이 바람을 땅 위에 불게 하시매 물이 줄어들었고

 

그 다음으로 사용된 곳이

9:15 내가 나와 너희와 및 육체를 가진 모든 생물 사이의 내 언약을 기억하리니 다시는 물이 모든 육체를 멸하는 홍수가 되지 아니할지라

 

이와 같은 용례를 보시면 기억하다, 생각하다로 번역된 자카르.... 여호와의 언약과 관련되어서 사용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즉 한나가 도저히 방법이 없어서 오직 하나님 앞에만 나아가게 된 것도.... 그가 간절하게 기도하고 자녀를 하나님께 온전히 드릴 것을 서원하게 된 것도 어린 사무엘을 여호와의 집에 온전히 드리게 되는 일련의 과정들이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들과의 맺으신 언약 때문임을 알 수 있습니다.

 

한나가 사무엘이라고 이름을 짓습니다.

그 이름의 의미가.... 하나님으로부터 아이를 구해서 얻었다....[여호와께 구함]이라는 뜻입니다.

 

한 가정의 일상의 문제로 보여 질 수 있지만 이러한 상황들을 통해서 하나님은 자기 백성들과 맺으신 언약을 성취해 가신다는 사실을 알 수 있게 합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한나를 언약을 이루어 가시는 통로로 사용하신 것입니다.

자기 소견에 옳을 대로 행하므로 하나님의 축복을 누리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해 한나는 축복의 통로가 되었던 것입니다.

 

꽤 오래 전부터 축복의 통로라는 말을 많이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말의 진정한 의미는 하나님께서 언약을 성취해 나아가실 때,

그 일에 함께 동참하는 사람을 두고 하는 말입니다.

 

우리가 앞에서도 살펴본 바와 같이 이렇게 하나님의 축복의 통로로 쓰임 받는 사람들에게는 특징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위하여..... 하나님 때문에.....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축복의 통로로 살아가는 것이 어렵게 느껴질 수 있지만 한 가지 절대적으로 알아야 할 것은... 이 사람들의 삶은 하나님께서 절대적으로 개입하시는 삶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어떠한 문제 앞에 직면하게 되더라도 하나님께서 직접적으로 개입하셔서 그 문제를 해결해 주시는 경험을 통해 굳건한 믿음의 사람으로 성장하게 된다는 사실입니다.

 

언제든지 한계상황에 부딪힐 수 밖에 없는 인간의 조건에서 이러한 의식... 즉 하나님께서 함께 하신다는 체험적인 믿음은... 모든 문제를 믿음으로 극복할 수 있게 될 것을 기대하고 기도하는 사람으로 살 수 있게 합니다.

 

이 사람들의 또 하나의 특징은 서원한 대로 순종한다는 것입니다.

 

20~28절에서는

하나님께서 응답하신 것과 한나가 서원한 것을 그대로 실행하기 위해 어떻게 했는지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특히 21~22절을 보시면.....

매우 특별한 한나의 마음을 볼 수 있는데요....

정말 어렵게 얻은 아들....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자식을 여호와께 드리기 위해.... 젖 떼기 까지 기다려 달라는 말을 합니다.

 

젖을 뗀다는 것을 이제 어른들과 같이 먹을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인데요...

보통 이정도 성장하게 되면 대소변도 가릴 수 있을 것으로 보여집니다.

 

이제 누군가에게 맡겨도 될 만큼 자랐다는 말인데요.... 그렇다고 하더라도... 너무 어린 나이임은 분명합니다.

 

이렇게 어린 아이를 하나님의 전에 온전히 드린다는 것을 결코 쉬운 일은 아니지요.

 

23~24에서는

민수기 15장에 나오는 서원제를 드리는 방법을 설명하고 그 방법대로 서원제를 드립니다.

 

한나는 아이가 없을 때에도 오직 하나님 앞에 나아가 자신의 억울함을 호소했지만... 아이를 주셨을 때에도 여전히 하나님을 향한 신실한 믿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24절을 보시면 아이가 어리더라...고 합니다.

여기서 어리다는 것은 이유식을 하는 나이라는 뜻입니다. 겨우 3~4살 정도의 나이입니다.

 

마카비서에는 이스라엘 여인들이 만 3살이 지나면 아이들의 젖을 떼는 관습이 있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어린 아이를 여호와의 전에 놓고 온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자 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3:16)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나 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그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니라(요일4:9)

 

한나가 사무엘을 드리는 과정을 통해 독생자를 내주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조금 알 수 있었을 것입니다.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나님의 마음을 조금 더 잘 알 수 있을까요?

 

한 가지 더 추가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것은 당시 제사장인 엘리와 그 아들들이 신실한 사람들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을 것이 분명한데도 하나님 앞에 서원한 대로 행합니다.

 

이러한 한나의 행동은 무엇을 반영해 줍니까?

오직 하나님만 바라보고 하나님 앞에서 순종하는 절대믿음, 절대 신앙의 자세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또한 사무엘은 사사시대를 종결하고 왕정체제로 전환하는 중요한 역사적인 시기에 하나님의 신실한 통로로 쓰임받기 위해 어려서부터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이었다는 것을 잘 나타내 주고 있습니다.

 

대 혼란기요 역동적인 변화 속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사무엘의 말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였던 중요한 요소 중의 하나입니다.

 

이와는 반대로 엘리와 그 아들들과 그 사환들은 성인이었고 직분도 제사장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제사를 멸시하고 하나님을 모독하는 신앙적 미숙함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사무엘이 어렸지만 그가 여호와의 전에서 서원제를 드릴 때 ...28절 끝에 보시면... 거기서 여호와께 경배했다고 기록합니다.

 

25~26에서

한나가 움직이는 동선을 보시면.... 거침없이 행동합니다. 제사를 드리자마자 지체하지 않고 바로 엘리 제사장에게 갑니다.

 

19절에서도 응답을 받은 다음날 아침 일찍 일어나 집을 향했던 것처럼 .... 제사를 마치자마자.... 더 이상 망설이거나 지체하지 않고 바로...엘리에게 사무엘을 맡기려고 갑니다.

 

27

이처럼 한나가 망설임 없이 행동할 수 있었던 근거가 있습니다. 바로 아이를 위해 하나님께 기도했고.... 태의 문을 열고 닫으시는 분이시며, 천지 만물을 주관하시는 전능자이심을 확실하게 믿는 절대신앙의 자세 때문입니다.

 

많은 분들이 기도할 때, 우리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이라고 기도를 시작합니다.

 

이런 기도의 자세는 정말 좋은 것입니다.

즉 생사화복을 하나님께서 주관하신다는 그 믿음으로 살겠다는 소원이며 그대로 믿는 다는 기도일 것입니다. 그렇다면 사실 그대로의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함으로 삶과 행위가 변화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믿음의 행위는 앞에서 말씀드린 것과 같이 인간의 한계상황이나... 역경 앞에서도 모든 것을 주님의 손에 맡기고 주님께서 주관하고 다스리고 통치하실 것을 온전히 바라봄으로 하나님께서 이루어 가시는 구속사에 동참하는 축복을 누리게 됩니다.

 

우리가 바라보아야 할 세계관은 하나님의 주관하심과 통치하심에 대한 믿음의 시각입니다.

 

우리는 혼돈과 분열과 전쟁의 소문으로 가득한 세상에서 어떻게 하나님의 축복의 통로로 살아 갈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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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에스더

    오직 믿음으로 나아가며...
    우리 죄를 위해 생명까지 내어주신 그 은혜로...
    주님 가신 그 외로운 길을 따라...
    한 걸음씩 잠잠히 나아감으로...
    축복의 통로가 되기 원합니다

    2 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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